손주를 위한 회고록 "할배 노래"

할배 노래

배효철 (여산) 2021. 3. 2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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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들을 위한 배효철 회고록>

            할배 노래

 

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거룩히 하자

자신을 사랑하듯

가족을 사랑하고

또한 내 이웃을 사랑하리라

 

사랑의 나눔이 크면 클수록

나의 인생은

늘 밝고 맑으며 건강하리라.

(가훈; 밝게 맑게 건강하게, 원문)

 

1, 고희를 지나고 한해를 더 보낸 신축년 4,

생일날이 다가오면서 이것저것 생각에 잠기는 일이 생기네

나의 손주 중 다섯 번째인 손주, 아들의 큰딸 윤서가 카톡이 열렸다고 나에게 인사로

이모티콘을 보내니 답해주면서 용인 쪽에 떨어져 사는 까닭에 자주 접하지 못하는,

내 친손녀인데 마음으로 많이 못 챙긴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얼마 전 천주교 미사 집전 시에 신부님 도우는 복사 어린이가 되었다고 해서

가문에 영광이라고 하며 주일미사 참석하여 함께 기도한 초교 3학년생인 손녀가

대견하기도 했었다.

그리 영광을 안겨 준 친손녀에게 반가운 마음에 문득 인사한 개인 카톡 답글에

청하지도 않은 신문에 실린 시 두 편 사진 보내고 아직 아이가 이해도 못 할

예전 우연히 만들어 두었던 영상 자서전까지 보내어,

할아버지를 좀 더 알리고 무언가 존재감을 심어주려 혼자 설레발이 치곤 했었네.

아이는 아마도 이게 뭐지? 했을 것이다.

아들이 사업한답시고 년 일 바쁘게 열심히 살다 보니, 친손주들은,

먼저 훌쩍 커버린 딸네들 손주들만큼, 어릴 적부터 자주 어울리지 못하여

늘 서로가 서먹하게 산 게 사실이다.

할아버지가 대단하지도 못하고 줄 것도, 남겨 놓을 것도 없는 부족한

보통스럽게 살아 온 사람인데, 그래도 무언가 살아온 인생길이

어떤 삶을 이어가고 어떻게 가정을 이끌고 가꾸어 왔는지? 를 알려주고

자손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이 될만한 것들을 남겨 두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2, 하여,

나는 고향 경남 진해시에서 부모님 덕분에 유년 생활은 다복하게 보낸 셈이다.

진해 ()시청, 보건소 앞에 있는 해원장여관진해에서는 제법 큰 여관으로서

주로 여행 단체객들 학생 경우 약 3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1,2위 하는 여관을

부모님이 운영하셨다. 7형제 중 위로 누이가 둘, 세번째 나, 동생네명 중 아들동생에

여동생셋인 대 가족으로, 그래도 장남이라 자식 중 대우가 좋은 편이었다.

아버지 배정석(베드로)씨와 어머니 이임수(마리아)씨 두 훌륭한 부모님 덕분으로

학생시절은 그저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하며 활발하게 잘 컷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께서는 인물 좋으시고 말 재주가 좋아서 농을 즐기시고,

가무가 출중하셨던 분이시다. 예술성은 아버지에게 물러 받았다고 보고,

어머니는 고직하시고 오직 자신의 일에 만, 몰두 다른 이와 사귐도 마음을

잘 열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나는 이 두 분의 장점만을 닮아 양면을

잘 적응하며 삶을 순조롭게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주로 외모는 어머니 쪽을 그대로 받았고, 아버지를 닮은 큰누이와

바로 아래 여동생은 외모가 당시 유명한 여배우 못지않은 이쁜 모습들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서울에서 생활하다 보니, 집안 소식이 뜸했고 당시 운영하는 여관에

연이은 인사사고가 나면서 무서움을 타는 어머니는 집 팔기를 원하셔서,

내가 졸업 후에

그곳에 호텔을 지어 보겠다는 욕심을 낸 일본식 정원을 가진 멋있는 우리집을

팔아버리고 근처 땅 평수가 넓은 주택을 매입 이사를 하면서

우리집의 가세는 점점 나빠지는 현상으로 가면서

아버지의 독단적 선택의 연속 실패를 맛보게 되었다.

잠시 목욕탕을 매입 신축해 운영도 하였으나 오일사태가 나면서

거의 집안이 바닥으로 흘렀던 역사가 있을 때 나는 해군을 다녀오고

대학 졸업할 당시이다.

우리 집사람을 만난 것도 가장 어려운 시기 바로 그때이었다.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서울 신정단지로 주택 매입해서 아래 동생들 데리고

가족 모두이사 오게 되고, 졸업 후 태광산업 본사에 입사한 후

그때부터 가장으로서 가족 전부를 부양해야 하는 인생에 첫 출발이 시작된다.

 

3, 아버지 자신이 일구어 온 전 재산을 아버지 마지막 사업에 다 날려버리고

우리부부의 첫 출발은 가족 모두와 함께 지하 전셋집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께서는 가끔 술 한잔하신 후 귀가하시면

평소는 부처님 같았던 분이 나름 받은 스트레스를 엄마나 가족들에게 푸시곤 해서,

나는 그때마다 엄마의 보디가드 역할을 몸으로 막아내곤 했었다.

그 시간이 아주 곤욕스럽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여,

늘 내가 결혼하면 부인이나 아이들에게 절대 손찌검 없이 웃음 가득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어느 가정보다 더 행복한 삶을 가족들에게

전해 줄 것이라 다짐하곤 했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지키며 나의 삶에 큰 기둥이기도 하다.

결혼 후, 이러한 것들을 지키는데는 우리 집사람 아내의 역할이 매우 크다.

 

마음씨가 고와 5년간의 연애 끝에 조촐하게 결혼식 하여, 부모님 모시고

동생들 네명을 적던많던 있는 그대로 주며, 모두 결혼 출가 시키는데까지

큰 사랑을 준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두 분 부모님 모시고 가실 때까지 착한 며느리로 사랑받고 주며

자신의 도리를 잘 일궈 낸 사람이기도 하다.

동생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나니, 우리 아이들 셋이 뒤따라 커 가면서

적은 월급으로 대학 입학, 졸업시키고 순서에 짝 맞추어 출가 결혼시키니,

울 부부는 어느새 뒤를 돌아다 보는 나이가 되어 버렸네.

 

4, 아이들 출가하니 바로 그의 짝들 이창호와 하상우, 박꽃나래 셋과 그 아이들이

주님의 은총으로 이쁘게 찾아와 주고, 우리 둘 부부되어 가족 모두 15명으로

이루는 쾌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나의 착한 첫째 딸 리나가 이다윤,이제우 4, 이쁜 두째딸 수나가 하윤재,하윤지 4

아들 종일이는, 배윤서,배주한,배윤슬 5명의 가족 구성원을 이루며

자신들의 행복을 잘 가꾸어주니 이는 주님의 축복이요! 은총이며 곧 사랑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꿈꾸었던 행복한 가정을 올바른 삶 속에 성실히 지켜온

나의 굳은 의지가 사랑을 이루고 행복을 서로 나눌 수 있어,

비록 크게 일구지 못한 재산이나마 가족의 사랑과 서로 믿고 의지하는

행복만큼은 누구에게도 비교하고 싶지 않는 마음으로 자리하고 있다.

 

5, 이쁜 손주들이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로 답하며,

나는 육십 줄을 넘길 무렵부터

손주들 좋아하는 울 집사람 자기 좋은 대로 하게 두고,

나는 젊은 날 하고자 했던 예술 분야에 아버지가 절대 불가 엄명으로 뒷전에 묻어둔 채,

 

가정사를 위해, 사회생활 열심히 몰두하여

첫 직장 태광산업부터 에이피테크놀리지, 강서고등학교, 우신하이텍,

원도 한도 없이 열심히 일했고, 늘 잘 봐주시는 주위 사람들로

좋은 평가 받으며 활력을 찾는 기쁨도 있었고, 또한 찾아주는 어려움은

정면 돌파로 이겨내며 충분히 즐긴 사회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6, 나의 인생 말년,

나는 늘 그렇게 해 왔듯이 해 보고 싶은 것 다 한번씩 체험해보고

그들의 삶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경험도 하며, 나의 남은 삶을 살찌우게 하리라,..

 

도전장을 쥐고, 수원예총 14기예술학교 수료, 2급레크레이션 지도자 자격 취득.

이순애민요교실 경기민요수업, 신풍국악예술단 창단, 민요각설이 공연,

서양화 입문, 극단 청춘극장 공연/단장, 시부문 문학계 등단, 한국화, 사군자, 캘리그라피,등과

난파합창단, 금빛합창단테너/부단장, ,..

 

60세이후부터 정상 시작하여 72세 현재까지 이르니, 십수년간의 나의 예술 활동은

나를 새롭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어, 혼자놀기달인 하면서

이제는,

1) 시인으로, 2) 서양화 초대작가로, 3) 서예가로 4) 합창단 단원으로,

계속 활동하며 나의 손주들에게 비록 물려줄 재산은 없으나,

할아버지는 종합예술가로 거듭 태어나면서 나의 예술 작품들을 남겨둠으로

너희 손주들에게 존경받는 할아버지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 남기고자 한다.

 

언젠가 할아버지 블로그를 열어 볼 기회가 생긴다면

그동안의 많은 작품과 얘기들로 기록 남겨두어, 너희들에게 올바른

삶과 성실한 자세로 인생을 굳건히 산다면

반드시 행복한 자신의 미래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고,

건강한 생활로 행복한 가정을 이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할아버지의 뜻임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2021. 03.

*분성배씨 중시조 배현경으로 23대 배 효 철.

 

*첨부; 배효철 프로필.(2021.03 현재)

 

배 효 철.

裵 孝哲.hyochul, Bae

 

경남 진해태생,1950년생 .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졸업(68학번).

태광산업 본사 총무과장 근무. ()우신하이텍/()에이펙테크 관리이사.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수상. 장르; 시 부문.

*시집- “삶의 채색된 노트

2회 대한민국나라사랑미술대전특선(추억여행)

2014 대한민국현대조형미술대전-특선(! 설악)

2014 신풍국악예술단 발전회장 역임.

2014-2016 극단 청춘극장 단장 역임.

2106 대한민국현대조형미술대전-장려상(맥은 흐르고)

16회 대한민국기로미술대전-특선(염원)외 다수 입선.

27, 28, 수원시서예문인화대전 입선

2017 버스정류장 인문학 글판 당선.

2018 현대여성미술대전 특선 (더숲폭포)

2018 현대조형미술대전 장려상 (늘솔길)

2018 수원문학인상 수상.

2019.06 대한민국현대여성미술대전 특별상(노을등대)

2019.11 대한민국현대조형(여성)미술대전 초대작가 선정.

2020.05 8회 대한민국나라사랑미술대전 세종시의장상 수상.

2020.07 31회 대한민국서법예술대전 행초서부문- 특선.

2020.10 30회 수원시서예문인화대전 행초서부문- 특선 외.

 

, 금빛합창단 부단장 / 테너. ,서양화 초대작가, 시인

, 한국문학예술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2019, 사무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