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광교산 호숫길을 걸으며.. ㅡ 나의 일대기를 더듬고,
24.0710. 장마중 맑게 개인 날.
요즘 장마 중이라 오늘 시간별 날씨를
확인 한다. 오늘은 대체적으로 맑은 날이니
집사람에게 우산은 필요 없을거라 일러주고
출근 시킨다.
늘 그러하듯이 내려 주고는 광교산호숫길
힌바퀴를 돈다. 약 7천보 정도가 된다.
그동안 내린 비로 하늘이 깨끗해 졌다.
모처럼 햇빛을 보니 발걸음이 가볍게 걷는다.
지나는 사람이나 앞지르는 사람들도 상쾌한 듯
서로 표정 밝은 움직임으로 서로 주고 받는 얘기가 신나서 하는 말들이 지나는 사람도 다
알아 들을 수 있을 정도이다.
날 맑은 풍경을 나 혼자 만끽하는것 같아
절친들에게 선사하려고 연속으로 포인트에
장면을 담는다.
이 길을 걸은지도 십여년 정도가 되었을거다.
한창 때는,
이웃사촌들 과 주말이면 경기대 앞에서 만나
사계절 주말은 거르지 않고 형제봉으로 해서
절터까지로, 내려 와 숯불바베큐 먹는 맛에
열명 정도 시간있는 사람들 나와 막걸리 베낭에
지고 와 형제봉이나 지나 무덤가에서 나누어
마시던 추억 자연이 스쳐 지난다.
그때 친구들 여기 저기로 헤어지게 되어,
차츰 광교산 형제봉은 멀어지고,
이제는 헝제봉은 멀리서 구경만 하고,
주로 광교산호숫길이나 만석공원을 걷는다.
내 절친들 몇 합류하여 이웃사촌들 모임을 꾸준히 이어 와 이십여년을 주말마다
광교산이나 만석공원등을 걷고는 맛집으로 전전하며 나눔하는 스토리는 아직도 건재하다.
맑게 개인 하늘을 펼쳐 놓고 걸으니,
지난 세월의 흐름이 내 발걸음 놓는 곳마다
장면이 연출된다.
어느 정도 사회생활 종착지에 올 무렵 시작한
얼추 60세 부터 나의 취미생활은 시작이 되었다.
첨, 수원예총에서의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레크레이션 수강으로 인연 맺은 민요교실에서
민요각설이로 요양원.보훈원등 봉사활동이 공연의 첫 단추인 셈이다.
ㅡ신풍국악예술단, 청하요양병원으로 봉사공연! - https://bhc5005.tistory.com/m/330
ㅡ 당시, 집사람은 직장생활 하시다가
정년 후, 큰딸네 손주들 봐 주러 다니시니,
나는 외톨이가 되어, 원래 심심한 걸 싫어하니
매주 장안구민회관에 요일별로 하나씩 추가
수업 듣다보니 심심할새는 없었다.
순서는 헷 갈리나, 합창단에 입문하면서
서양화 수업을 들은 것 같으다.
월욜은, 금빛합창단 테너 파트로 시작해
파트장.부단장.단 장 까지 약 십여년을 합창
생활을 했다. 하면서도 난파합창단에서 와
자매한 매여울합창단 정기공연까지 다
합창 공연을 다녔으니 공연도 많이 했었네.
ㅡ제19회 수원합창제가 성공리에
마무리되다. -금빛합창단. https://bhc5005.tistory.com/m/1197
ㅡ 합창을 하면서 합창 연출가인,
작고한 김성열 연출의 권유로
"청춘극장"연극단을 창단하여 단장역을 맡아
약 수년간 수원시청.팔달구청.광교호수공원극장
등으로 열심히 공연을 이어가기도 했었다.
주로 주인공역을 맡아야해서 대사 량이 많아
자다가도 일어나 대사 연습을 했던 기억이난다.
ㅡ극단 청춘극장 11월20일 수원팔달구청 강당에서 정기공연하다 - https://bhc5005.tistory.com/m/409
ㅡ 동시에, 서양화,서예,사군자, 캘리그라피 등을
하면서 서양화는 초대작가까지 되고는 요즘
그림 보관할 곳도 미술계의 작가 처우가 싫어
손도 아프고 해서 그냥 쉬고 있다.
ㅡ2021, 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협회 추천작가 자격취득. - https://bhc5005.tistory.com/m/1010
ㅡ서양화 화우들중 네명은 빛그림방 회원으로
매월 정기적 모임을 지금도 꾸준히 이어온다.
ㅡ제31회 대한민국서법예술대전 ㅡ특선 - https://bhc5005.tistory.com/m/877
한참 걷고보니, 쉼터 화장실에 도착하여
잠시 쉬어가며 절친들에게 맑음을 선사하고.
또 반대편으로 돌아서 걷는다.
아마도 작년쯤에 데크길이 설치되었을거다.
요즘 편하여 예전 돌아가던 길을 한바퀴로
돌면서 걷는다.
ㅡ 요즘 나는 즐겨 블로그 작업을 한다.
첨엔, 싸이월드에서 시작했으나 없어지면서
자료들이 다 날아가 버렸다.
하여, 다시 시작한 것이 다음싸이트에
"해월" 블로그로 하다가 합창단에서 만난 한문선생 유선종 친구가 호를 "여산"으로 바꾸어 주어,
요즘은 여산 배효철 블로그 로 이름만 쳐도 검색하면 나온다.
ㅡ배효철 (여산) 블로그
bhc5005.tistory.com/
ㅡ 아마도 블로그는, 시인으로 등단한 후.
더 적극적으로 글을 남기며 나의 모든것들을
사진이나 글로 만들어 남기고 벗들에게도
전하 곤 한다.
아마도, 시는 중학교1학년 때 담임이신 국어 여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노트에나 낙서한 것들
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대학교때는 대힉노트 가득 채운 시집노트를
하숙집 국어과 후배가 빌려 달라해서 주었다가
잃어 버렸었다.
사회생활 할때야 이 모든것들을 어찌하겠나.
학창시절에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고.
아버지께서는 오직 법대.의대.상대 외는
절대 불가이니 중학교때 미술반도 포기하고
고등학교 때 합창반도, 대학때 잠간 연극도
모두 불가령이 떨어져 별 재미도 없는
중대 경제과에서 겨우 턱걸이 하며 졸업 하였으니, 취직이 잘 될리가 있었나?
중앙대 경제과 출신으로 대기업에 서류만
내어도 떨어지니, 우울하다가 겨우 경제학회
추천으로 태광산업 본사에 입사되는 영광을
얻었다.
첫 직장이라 경리과에서 로칼과로
로칼과에서 실적항상 열배로 키워 로칼신이
되어 칭송받고, 또 다시 총무과로 ..
다시 회사를 몇개 거쳐 ㅡ
참으로 직장생활은 원도 한도 없이 열심히 했고
늘 그 파트에서는 최고라 하고 큰소리 쳤다.
총무에서 20여가지 넘는 많은 일 중에서
추가로 떠 맡은 사보펀집 일까지 하면서
글과도 더 가까이 가게 되었을 것이다.
ㅡ시, 샐러리가 그은 선 - https://bhc5005.tistory.com/m/48
시인으로 등단은, 아마도 2017년도 서울에
있는 " 한국문학예술 "로 등단하였다.
그 이듬해 수원에 살고 있으니, 수원에서
활동하려고 수원문학에 문을 두드려 회원
가입을 하게 되어, 오늘에 까지 수원문학인 시인으로 지금까지 활동을 잘 하고 있다.
이 또한 문인으로 7~8년 하다보니
수원문인협회 에서 사무차장에서 사무국장으로
잠시 잘 쉬다가 감사 맡아주기를 원해
거절 못하는 습관으로 물리치지 못하고
칠학년 중반에 다른 종목들은 다 내려 놓았는데,
즉, 합창단.서양화.가곡반.민요,등등
어느 선배 말씀 이 시인은 전,시인이라 안 쓴다.
다른 직종은 전직을 표하나 시인은 영원하다.
하셨다.
요즘은,
가장 스트레스 안 받는 재밋고 신나는
금요일 김양님노래교실에 만 나가며,
한가하게 살아보려 한다.
시간 맞으면 혼자나 친구와 국내여행 정도 다니며 내가 가진것 만큼 만 즐기고
건강관리 잘 하여,
나의 행복 주는 일촌 부인과
울 아이들 셋, 손주들 7명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아야 된다.
진즉에 요새 사귄 친구 이상융 화백과
인물화가 이현우 화백 친구들 만났으면
울 아이들이나 손주들 그린 그림들 더
잘 그려 주었을텐데...
그래도 책상앞에 할아버지가 그려준 그림보고
좋은 기억에 남는 아버지로 또 할아버지로
이웃하는 절친들과 어울리며 웃고 웃으며
미소를 전 하는 삶이 되도록 해야 않을 까?
나는 와이프 덕분에
종합예술가가 된 사람이다.
우수한 작가는 아니나 예술의 맛은
조금씩 다 본 사람일거다. 하하,
그리하며 시를 노래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 수 놓는 화가이며
시인이 될 것이다.
주님!
늘 사랑과 은총으로 보살펴 주시는 은혜
깊이 깊이 감사 드리옵니다.
사랑을 전 하겠습니다.